티코 브라헤[Tyge Ottesen Brahe ] 신성(新星)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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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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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12.14.~1601.10.24.
덴마크 스코네 주(현재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관측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1546년에 덴마크의 스코네에서 오토 브라헤(Otto Brahe)의 맏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으로 덴마크 왕실에서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높은 성직자와 정치가를 배출한 중요한 가문 출신이었다.
티코는 형의 양자로 백부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티코 브라헤는 천문학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맨눈으로 가장 정밀한 천문 관측을 남긴 귀족 출신의 천문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성술사이기도 했다.
그는 결투를 하다가 코를 잘려서 금속으로 만든 코를 달고 다녔고, 거대한 순록을 애완동물로 키운 것 같은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태양중심설(지동설)을 받아들이는 대신 고전적인 지구중심설(천동설)을 믿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을 부정하는 관측 증거를 발견했고, 이런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와해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티코 브라헤는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의 장점만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혼종적인(hybrid) 천문학 체계를 만들었지만,
그의 체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수용하고 발전시킨 케플러(Johannes Kepler)라는 천문학자를 제자로 키웠으며,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남긴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행성의 타원궤도 운동처럼 천체에 대한 혁신적으로 새로운 설명을 제시했다. 케플러의 업적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을 널리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572년 11월 11일에 티코는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예상치 않게 나타난 굉장히 밝은 별을 관찰했다.
고대 이래로 달 궤도 위쪽의 천상계는 영원히 불변한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에, 다른 관찰자들은 이 현상이 달 아래쪽의 지상계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튀코는 이 별의 경우에 달이나 행성에게서 나타나는 일주 시차(daily parallax, 행성의 위치가 지구의 다른 지점에서의 관찰시 다르게 나타나는 것)가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이 별이 달이나 그러한 시차를 보여 주는 행성들 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고 결론 지었다. 그는 이런 증거가 이 새로운 별이 천상계의 고정될 별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1573년에 그는 『새로운 별(De nova stella)』이라는 작은 책을 출판했고, 여기에서 이런 경험적인 증거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천문학 체계를 고집하는 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이들을 놓고 “오 머리가 아둔한 자들이여, 오 하늘을 관찰하는 눈 먼 자들이여”라고 일갈했다. 티코가 새로운 별에 붙인 ‘노바(nova)’라는 용어는 신성(新星)을 의미하는 용어로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덴마크 스코네 주(현재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관측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1546년에 덴마크의 스코네에서 오토 브라헤(Otto Brahe)의 맏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으로 덴마크 왕실에서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높은 성직자와 정치가를 배출한 중요한 가문 출신이었다.
티코는 형의 양자로 백부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티코 브라헤는 천문학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맨눈으로 가장 정밀한 천문 관측을 남긴 귀족 출신의 천문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성술사이기도 했다.
그는 결투를 하다가 코를 잘려서 금속으로 만든 코를 달고 다녔고, 거대한 순록을 애완동물로 키운 것 같은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태양중심설(지동설)을 받아들이는 대신 고전적인 지구중심설(천동설)을 믿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을 부정하는 관측 증거를 발견했고, 이런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와해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티코 브라헤는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의 장점만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혼종적인(hybrid) 천문학 체계를 만들었지만,
그의 체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수용하고 발전시킨 케플러(Johannes Kepler)라는 천문학자를 제자로 키웠으며,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남긴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행성의 타원궤도 운동처럼 천체에 대한 혁신적으로 새로운 설명을 제시했다. 케플러의 업적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을 널리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572년 11월 11일에 티코는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예상치 않게 나타난 굉장히 밝은 별을 관찰했다.
고대 이래로 달 궤도 위쪽의 천상계는 영원히 불변한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에, 다른 관찰자들은 이 현상이 달 아래쪽의 지상계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튀코는 이 별의 경우에 달이나 행성에게서 나타나는 일주 시차(daily parallax, 행성의 위치가 지구의 다른 지점에서의 관찰시 다르게 나타나는 것)가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이 별이 달이나 그러한 시차를 보여 주는 행성들 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고 결론 지었다. 그는 이런 증거가 이 새로운 별이 천상계의 고정될 별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1573년에 그는 『새로운 별(De nova stella)』이라는 작은 책을 출판했고, 여기에서 이런 경험적인 증거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천문학 체계를 고집하는 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이들을 놓고 “오 머리가 아둔한 자들이여, 오 하늘을 관찰하는 눈 먼 자들이여”라고 일갈했다. 티코가 새로운 별에 붙인 ‘노바(nova)’라는 용어는 신성(新星)을 의미하는 용어로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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