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뵐러 [Friedrich Wohler] 요소의 합성 (효소 酵素 enzyme)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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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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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7. 31 ~ 1882. 9. 23
독일
화학자
과거에는 생물, 또는 "유기물" 이 무기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생물의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하는 어떤 "생명의 힘" 이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생기론은 과학적 증거보다는 종교적 확신을 근거로 했으며 일반적으로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뵐러는 시안산 : [Cyanide Acid] 무색의 액체로 아세트산과 비슷한 냄새가 나며 녹는점 -86.8℃, 끓는점 23.5℃이다. 0℃ 이하에서는 안정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에서 대부분은 시아메리드, 일부는 시안우르산으로 급속하게 중합한다. 또 급속히 가열하면 폭발한다. 에테르·벤젠에 녹고 몇 주일 동안은 안정하다. 물에는 조금 녹고 찬물 속에서는 몇 시간은 안정하지만 가수분해하여 쉽게 탄산수소 암모늄이 된다. 다소 강한 산이다. 반응성이 크고 알코올·산아미드 등에 반응하여 우레탄·우레이드를 만든다. 시안우르산을 건조한 이산화탄소 또는 질소 기류 속에서 서서히 380~400℃로 가열하고 발생하는 기체를 냉각제로 냉각하면 얻는다. 눈·피부 등을 자극하고 유독하다.] 을 발견하며, J.리비히와 공동연구한 ‘이성질체’의 존재를 강조하여 화학구조이론에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그 외 유기화합물의 실험실 합성의 가능성 주장, 유기화합물의 기이론 확립에 기여, 알루미늄·베릴륨의 단리, 결정규소 및 붕소의 제출, 일련의 규소화합물의 발견, 탄화칼슘의 발견 등의 업적이 있다.
1820년 마르부르크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에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옮겨 182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L.그멜린의 영향을 받아 화학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23년 스톡홀름의 J.베르셀리우스 밑에서 화학분석에 대하여 배우고 1825년에 귀국하였다. 베를린공업학교의 교사와 카셀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183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괴팅겐대학의 화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그는 베르셀리우스 밑에 있을 때 시안산(酸)을 발견하여, 그 화학식이 J.리비히가 발견한 풀민산과 일치한 사실에서 두 사람이 공동연구한 ‘이성질체’의 존재를 강조하여 화학구조이론에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1828년에는 시안산암모늄에서 그 이성질체인 요소(尿素)를 합성하여 유기화합물의 실험실 합성의 가능성을 주장, 유기화학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그 후 리비히와 공동으로 발표한 <벤조산의 기(基)에 관하여>(1832)라는 논문은 유기화합물의 기(基)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알루미늄 ·베릴륨의 단리(單離), 결정규소(結晶珪素) 및 붕소의 제출(製出), 일련의 규소화합물의 발견, 탄화칼슘의 발견과 그것에 의한 아세틸렌의 제출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업적이 많다. 주요저서로는 《무기화학의 기초》(1831) 《유기화학의 기초》(1840) 등이 있다.
독일
화학자
과거에는 생물, 또는 "유기물" 이 무기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생물의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하는 어떤 "생명의 힘" 이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생기론은 과학적 증거보다는 종교적 확신을 근거로 했으며 일반적으로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뵐러는 시안산 : [Cyanide Acid] 무색의 액체로 아세트산과 비슷한 냄새가 나며 녹는점 -86.8℃, 끓는점 23.5℃이다. 0℃ 이하에서는 안정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에서 대부분은 시아메리드, 일부는 시안우르산으로 급속하게 중합한다. 또 급속히 가열하면 폭발한다. 에테르·벤젠에 녹고 몇 주일 동안은 안정하다. 물에는 조금 녹고 찬물 속에서는 몇 시간은 안정하지만 가수분해하여 쉽게 탄산수소 암모늄이 된다. 다소 강한 산이다. 반응성이 크고 알코올·산아미드 등에 반응하여 우레탄·우레이드를 만든다. 시안우르산을 건조한 이산화탄소 또는 질소 기류 속에서 서서히 380~400℃로 가열하고 발생하는 기체를 냉각제로 냉각하면 얻는다. 눈·피부 등을 자극하고 유독하다.] 을 발견하며, J.리비히와 공동연구한 ‘이성질체’의 존재를 강조하여 화학구조이론에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그 외 유기화합물의 실험실 합성의 가능성 주장, 유기화합물의 기이론 확립에 기여, 알루미늄·베릴륨의 단리, 결정규소 및 붕소의 제출, 일련의 규소화합물의 발견, 탄화칼슘의 발견 등의 업적이 있다.
1820년 마르부르크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에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옮겨 182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L.그멜린의 영향을 받아 화학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23년 스톡홀름의 J.베르셀리우스 밑에서 화학분석에 대하여 배우고 1825년에 귀국하였다. 베를린공업학교의 교사와 카셀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183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괴팅겐대학의 화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그는 베르셀리우스 밑에 있을 때 시안산(酸)을 발견하여, 그 화학식이 J.리비히가 발견한 풀민산과 일치한 사실에서 두 사람이 공동연구한 ‘이성질체’의 존재를 강조하여 화학구조이론에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1828년에는 시안산암모늄에서 그 이성질체인 요소(尿素)를 합성하여 유기화합물의 실험실 합성의 가능성을 주장, 유기화학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그 후 리비히와 공동으로 발표한 <벤조산의 기(基)에 관하여>(1832)라는 논문은 유기화합물의 기(基)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알루미늄 ·베릴륨의 단리(單離), 결정규소(結晶珪素) 및 붕소의 제출(製出), 일련의 규소화합물의 발견, 탄화칼슘의 발견과 그것에 의한 아세틸렌의 제출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업적이 많다. 주요저서로는 《무기화학의 기초》(1831) 《유기화학의 기초》(184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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