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돌턴[John Dalton ] 원자론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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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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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6.9.6 ~ 1844.7.27
영국
화학자, 물리학자
원자론의 창시자이다. 기상에 관한 저서 《기상학상의 관찰과 논문》이 있으며, 색맹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기체에 관한 연구로, 기체의 압축에 의한 발열, 혼합기체의 압력, 기체의 확산혼합 등과 그 외 연구가 있다.
퀘이커 교도에게 수학을 배워 12세에 사설 강습소를 개설하였고, 15세에 켄들에서 형과 함께 학교를 경영하였다.
그 후 1792년 맨체스터의 뉴칼리지에서 수학과 자연철학을 가르쳤으며, 1800년에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수학 ·과학 등을 가르치는 교사로 있으면서 평생을 연구에 전념하였다. 1794년 맨체스터문학철학학회 회원, 1800년 서기, 1808년 부회장, 1817년 회장을 역임했다. 최초의 연구는 기상관측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후 57년간 2만 회의 관측을 계속하였다.
이에 관한 연구는 오로라(aurora) ·무역풍 등을 포함하는 기상에 관한 저서 《기상학상의 관찰과 논문 Meteorological Observation and Essays》(1793)에 발표되었으며, 또 색맹(色盲)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발표(1794)하기도 하였는데, 그 자신도 색맹이어서 이때부터 색맹을 돌터니즘(Daltonism)이라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 후는 기체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여, 기체의 압축에 의한 발열(發熱), 혼합기체의 압력, 기체의 확산혼합(擴散混合), 액체에 대한 기체의 흡수 등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는데, 특히 《혼합기체의 흡수작용 Absorption of Gases by Water and Other Liquids》(1805)에서 제시한 기체의 부분압력(部分壓力)의 법칙은 지금까지도 ‘돌턴의 부분압력의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I.뉴턴의 영향하에 원자론(原子論)을 화학분야에 도입하였고, 각종 물질의 원자의 무게를 정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1803).
그러나 그의 원자설은 J.L.게이뤼삭이 발견한 ‘기체반응의 법칙’(1808)에 대한 설명에 곤란을 가져옴으로써 A.아보가드로의 ‘분자설(分子說)’(1811)의 확립을 보게 되었으나 돌턴 자신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원자설을 바탕으로 하여 화학을 설명한 저술은 《화학의 신체계(新體系)》(3부, 1808∼1827)이며, 이와 관련해서 그는 ‘배수비례(倍數比例)의 법칙’을 발견하였는데(1804), 이 발견은 화학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영국
화학자, 물리학자
원자론의 창시자이다. 기상에 관한 저서 《기상학상의 관찰과 논문》이 있으며, 색맹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기체에 관한 연구로, 기체의 압축에 의한 발열, 혼합기체의 압력, 기체의 확산혼합 등과 그 외 연구가 있다.
퀘이커 교도에게 수학을 배워 12세에 사설 강습소를 개설하였고, 15세에 켄들에서 형과 함께 학교를 경영하였다.
그 후 1792년 맨체스터의 뉴칼리지에서 수학과 자연철학을 가르쳤으며, 1800년에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수학 ·과학 등을 가르치는 교사로 있으면서 평생을 연구에 전념하였다. 1794년 맨체스터문학철학학회 회원, 1800년 서기, 1808년 부회장, 1817년 회장을 역임했다. 최초의 연구는 기상관측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후 57년간 2만 회의 관측을 계속하였다.
이에 관한 연구는 오로라(aurora) ·무역풍 등을 포함하는 기상에 관한 저서 《기상학상의 관찰과 논문 Meteorological Observation and Essays》(1793)에 발표되었으며, 또 색맹(色盲)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발표(1794)하기도 하였는데, 그 자신도 색맹이어서 이때부터 색맹을 돌터니즘(Daltonism)이라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 후는 기체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여, 기체의 압축에 의한 발열(發熱), 혼합기체의 압력, 기체의 확산혼합(擴散混合), 액체에 대한 기체의 흡수 등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는데, 특히 《혼합기체의 흡수작용 Absorption of Gases by Water and Other Liquids》(1805)에서 제시한 기체의 부분압력(部分壓力)의 법칙은 지금까지도 ‘돌턴의 부분압력의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I.뉴턴의 영향하에 원자론(原子論)을 화학분야에 도입하였고, 각종 물질의 원자의 무게를 정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1803).
그러나 그의 원자설은 J.L.게이뤼삭이 발견한 ‘기체반응의 법칙’(1808)에 대한 설명에 곤란을 가져옴으로써 A.아보가드로의 ‘분자설(分子說)’(1811)의 확립을 보게 되었으나 돌턴 자신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원자설을 바탕으로 하여 화학을 설명한 저술은 《화학의 신체계(新體系)》(3부, 1808∼1827)이며, 이와 관련해서 그는 ‘배수비례(倍數比例)의 법칙’을 발견하였는데(1804), 이 발견은 화학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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