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헤르만 뭘러[Paul Hermann Muller] DDT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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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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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 1965년
스위스
화학자
바젤 대학을 졸업하고, 바젤의 가이니 회사에 입사하였다. 1930년 가죽을 무르게 하는 합성제 일르가탄을 발명하였다. 1939년 농작물의 해충 대책을 연구하여 DDT를 새로운 방법으로 합성하여, 그 강력한 살충 효과를 발견하였다. 1942년 DDT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여 세계의 보건 위생에 공헌하였다. 1948년 살충제 연구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DDT의 역사
1874년에 자이들러(O. Zeidler)에 의해서 처음 합성되었으나 이때는 DDT의 효과가 무엇인지 몰랐다. DDT가 강력한 살충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1939년 스위스의 과학자 뮐러(P. H. Muller)에 의해 밝혀졌고 뮐러는 이 공적으로 194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일본에서 수출하던 천연재료 공급이 끊기면서 미국에서 처음 살충제로 실용화되었다. 싼 가격에 대량생산할 수 있고 처음 실용화될 때는 인간에게 무해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급속히 보급되었다. 이가 옮기는 티푸스나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1940년대부터 살충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1945년 이후에는 살충용 농약으로서 농업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1955년 국제건강기구(WHO)는 전 세계적인 말라리아 추방 계획을 세워 DDT를 적극 사용하고 이로 인해 말라리아 사망률은 10만 명 중 192명에서 7명으로까지 줄어든다. 그러나 1957년부터 DDT의 유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1962년에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판되면서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다. 특히 조류에 대한 유해성이 많이 지적되면서 결국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말라리아와 티푸스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에서 DDT를 살충제로 사용하고 있다.
스위스
화학자
바젤 대학을 졸업하고, 바젤의 가이니 회사에 입사하였다. 1930년 가죽을 무르게 하는 합성제 일르가탄을 발명하였다. 1939년 농작물의 해충 대책을 연구하여 DDT를 새로운 방법으로 합성하여, 그 강력한 살충 효과를 발견하였다. 1942년 DDT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여 세계의 보건 위생에 공헌하였다. 1948년 살충제 연구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DDT의 역사
1874년에 자이들러(O. Zeidler)에 의해서 처음 합성되었으나 이때는 DDT의 효과가 무엇인지 몰랐다. DDT가 강력한 살충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1939년 스위스의 과학자 뮐러(P. H. Muller)에 의해 밝혀졌고 뮐러는 이 공적으로 194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일본에서 수출하던 천연재료 공급이 끊기면서 미국에서 처음 살충제로 실용화되었다. 싼 가격에 대량생산할 수 있고 처음 실용화될 때는 인간에게 무해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급속히 보급되었다. 이가 옮기는 티푸스나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1940년대부터 살충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1945년 이후에는 살충용 농약으로서 농업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1955년 국제건강기구(WHO)는 전 세계적인 말라리아 추방 계획을 세워 DDT를 적극 사용하고 이로 인해 말라리아 사망률은 10만 명 중 192명에서 7명으로까지 줄어든다. 그러나 1957년부터 DDT의 유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1962년에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판되면서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다. 특히 조류에 대한 유해성이 많이 지적되면서 결국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말라리아와 티푸스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에서 DDT를 살충제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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