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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식나라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보일의 법칙

33,018 2017.09.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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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1.25 ~ 1691.12.30
영국(아일랜드 맨스터주 리즈모어 )
화학자, 물리학자

아일랜드의 화학자 ·물리학자. 화학에 실험적 방법과 입자철학을 도입하여 근대화학의 첫 단계를 구축하였으며,
이것은 주저 《회의적 화학자》에 잘 간추려져 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이튼 스쿨에 다녔다.
1641년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던 중 G.갈릴레이의 저서를 읽고 근대과학에 눈을 떴다.
1644년 귀국하자 런던에 4개월여 체류하면서 크롬웰 혁명파 인사들, 그리고 근대과학에 뜻을 둔 인사들과 사귀었다.
1646년 런던에 새로 생긴 과학자의 그룹 ‘인비저블 칼리지’에 가담하여 ‘자연과학은 인간생활에 유용하여야만 한다’는 F.베이컨 정신에 영향을 받았다. 이 모임에 가담한 것이 실험과학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647년 자비로 만든 실험실에서 의학과 화학의 실험을 시작하여 갈레노스식(式)의 낡은 의학에 반대하여 연금술이 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료수단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의료화학파의 사고방식에 따라 최초의 화학서적인 《독약을 의약품으로 바꾸는 일에 관해서》(1650)를 썼다.
1654년 인비저블 칼리지 회원들의 이동에 따라 옥스퍼드로 이사한 후 런던에 새로 생긴 또 하나의 신과학자 그룹, 즉 지금의 왕립협회의 전신인 옥스퍼드 그룹에 참가함으로써 그의 가장 활동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1655년에 쓴 <4원소설 ·3원질설(原質說)을 입증한다고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여러 가지 실험에 관한 고찰>에서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와 파라셀수스의 설에 대한 비판이 엿보이는가 하면, 《서설(序說)》(1661)에서는 스콜라학파(學派)의 자연철학을 비판하여 실험이 지니는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이제까지 소홀히 보아 넘겼던 침전물이나 증기(蒸氣) 등도 사실에 입각하여 포착, 그 화학반응을 전면적으로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1662년 Boyle은 공기의 부피는 그 압력에 반비례한다는, 소위 보일의 법칙을 발표했다
그후에도 산, 알칼리와 색의 관계(1663년), 진공과 불꽃(1672년), 연소, 하소(1673년) 등을 같은 입장에서 연구하여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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