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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식나라

그레고어 멘델[Gregor Johann Mendel] 유전법칙

33,533 2017.12.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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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7.22~1884. 1. 6.
오스트리아
식물학자·식물실험자


어릴 적부터 농사와 원예 일을 도왔던, 멘델은 자연스레 자연과학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1834년부터 1840년까지는 트로파우(지금의 체코의 오파바)의 김나지움(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과정을 다녔고,
1840년에서 1843년까지는 올뮈츠(지금의 체코의 올로모우츠)의 철학연구소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보충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학문에 대한 커다란 애착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지주가 시키는 강제노동으로 병이 나는 바람에 멘델은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843년 고향 근처에 있는 소도시인 모라바의 브륀(지금의 체코 브르노)에 있는, 14세기에 건립된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했으며, 그레고리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 수사로서의 생활은 멘델을 물질적 결핍에서 해방시켰으며,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1847년에 로마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수도원에서 수련 생활을 하는 동안에 과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1849년에 멘델은 브륀 근처에 있는 즈나임(즈노이모) 중등학교의 보조교사가 되어 잠깐 동안 그리스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이와 동시에 멘델은 이전의 못 이룬 대학교에서의 자연과학 공부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1850년 빈 대학교의 자연과학부의 입학을 시도하지만 입학시험에서 떨어졌고, 또한 정규교사 시험에 응시했으나 역시 떨어졌다. 그 뒤 대수도원장의 추천으로 빈 대학교에 겨울학기 청강생으로 입학했으며 이곳에서 물리학·화학·수학·동물학·식물학 등의 자연과학의 기초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1853년에는 견문과 학계와의 접촉을 넓히기 위해 빈의 동식물학회에 가입하게 되고, 1854년 완두콩의 해충에 관한 연구를 학회에서 발표한다.
1854년 그는 브륀으로 다시 돌아왔고
1856년부터는 교회에 있는 조그마한 뜰에서 완두를 재료로 하여 서로 교배했다. 이들 완두는 키가 큰 것과 작은 것,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피었을 때 색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과 같이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대립형질과, 씨의 색·모양, 줄기에 꽃이 피는 위치, 콩꼬투리의 모양 등 유사한 차이를 갖는 대립형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식물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대립형질이 변종과 그들의 자손에 계속 나타나는 것은 유전의 기본단위 때문이라는 이론을 세웠는데, 이 유전단위가 지금은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실험결과에 대한 멘델의 해석은 사람을 포함한 다른 생물들을 통해 계속 관찰되면서 충분히 증명되었는데, 이는 유전단위가 간단한 통계법칙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법칙의 기본원리는 잡종의 생식세포 안에는 양친 중 어느 한쪽에서 온 유전물질 절반과 다른 한쪽에서 온 유전물질이 절반씩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식세포 안에서 대립형질이 분리되는 것을 멘델의 제1법칙 또는 분리의 법칙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대립형질들이 여러 쌍 있을 경우, 이러한 형질들은 모든 가능한 조합을 이루며 독립적으로 자손들에게 전해진다고 했다. 그가 뿌린 완두의 여러 변종들에서, 그는 독립유전의 법칙에 따라 무작위로 재조합된 7쌍의 대립형질들을 관찰했으며, 이러한 원리를 통계적으로 검증하고,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유전에 대한 실험을 시작, 7년 후 '멘델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 사실을 1865년 브륀의 자연 과학 협회의 정례회에서 발표하고, 그 논문은 따로 인쇄하여 발표하였다. 그동안 식물에 대한 225회에 이르는 인공 교배를 하여 1만 2,000종의 잡종을 얻었으며, 계속 실험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인정받지 못하고 1900년대에 들어서야 재조명을 받게 된다.
제1법칙 ( 분리의 법칙) : 생식세포 안에서 대립형질이 분리되는 것을
제2법칙 (독립의 법칙) : 서로 다른 연관 그룹 또는 서로 다른 염색체 상에 있는 유전자에만 적용되는 것
우성도 관찰했는데, 이것은 잡종이 대립형질 가운데 1가지 형질만 나타내는 것

1868년까지 브륀 국립 실과 학교에서 자연과학을 가르쳤으나 교원 자격증은 끝내 얻지 못했다.

말년에 그는 "나의 시대는 반드시 온다."라고 말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그의 업적은 유전과 진화의 문제를 해석하는 데 있어 획기적인 대발견이었으며, 그에 의하여 유전학이 창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멘델의 연구는 ‘관찰→가설 설정→실험→법칙 수립’으로 이어지는 근대과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따랐다. 실질적이고도 명확한 근거를 통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유전학적 법칙을 완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그의 실험은 그 계획의 교묘함과 실험의 정확성, 자료 처리법이 탁월한 점, 논리가 명쾌한 점 등 생물학 사상 가장 뛰어난 실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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