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판 레이우엔훅 [Antonie van Leeuwenhoek] 미생물학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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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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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 ~ 1723
네델란드
미생물(아마추어 과학자)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태어났다. 바구니 제작일을 하던 아버지는 레이우엔훅이 여섯 살 때 세상을 떴다.
레이우엔훅은 레이던 근처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지만 정규 교육을 마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친척으로부터 수학과 물리의 기초적인 원리를 배울 수 있었다.
열여섯 살 되던 해인 1648년, 레이우엔훅은 한 스코틀랜드계 포목상인 밑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현미경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을 것이다.
그는 도제 생활을 하면서 유리를 입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기술도 배웠다.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으로 미생물학의 기초를 일군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초등 교육밖에는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영국 왕립학회에 보낸 서한들은 ‘영어로 번역되어’ 학회지에 실려야 했다.
당시 지식인들의 공용어라 할 수 있는 라틴어를 몰라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 써서 보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미경은 1590년에 네덜란드의 안경 제작자인 자카리아스 얀센이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현미경은 망원경 보다 먼저 발명되었다.
하지만 1608년 한스 리페르세이에 의해 발명된 후, 바로 그 다음 해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과 행성 관측에 활용한 망원경과는 달리
초창기 현미경은 과학과 관련해 별다른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레이우엔훅의 취미 생활은 현미경 제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현미경을 과학 연구에 활용했다.
그리고 1670년대 중반 그는 현미경을 통해 ‘극미동물’(미생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1676년 5월 26일, 그는 지붕 위에서 떨어진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순수한 빗방울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을 발견했다.
1674년 원생동물과 세균, 담수성의 조류 등 미생물을,
1682년 물고기 적혈구의 핵을, 1683년 가로무늬근육(횡문근)의 미세구조 등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발견하였으며, 자기 입에사나온 박테리아를 보았다. 연구과정과 결과 등을 50년 이상 영국 왕립학회 등에 지속적으로 보냈다. 그중에서도 사람 정자의 발견(1677년)은 정원설(精原說)에 물적 증거를 부여했고, 물속을 헤엄치는 수많은 미생물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을 정도로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의 저서는 『현미경으로 밝혀진 자연의 비밀』(4권, 1695년) 등이 있다.
레이우엔훅은 아마추어 과학자였다. 그러나 미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1723년 8월 26일,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세상을 떴다.
아흔이 넘게 장수한 이 아마추어 미생물학자는 평생 500개가 넘는 렌즈를 갈았다.
게다가 약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영국 왕립학회를 포함한 학회와 학자들에게 약 600통이나 보낼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 과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그는 죽기 12시간 전까지도 관찰을 계속했고, 왕립 학회에 서신 두 통을 보냈다.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만든 현미경 26개를 왕립학회에 기증했다. 하지만 관리 소홀 때문에 한 대조차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레이우엔혹이 제작한 현미경은 고작 9개 뿐이다. 그는 자신만의 현미경 제작법과 활용법을 평생 공개하지 않았고 무덤까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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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미생물(아마추어 과학자)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태어났다. 바구니 제작일을 하던 아버지는 레이우엔훅이 여섯 살 때 세상을 떴다.
레이우엔훅은 레이던 근처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지만 정규 교육을 마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친척으로부터 수학과 물리의 기초적인 원리를 배울 수 있었다.
열여섯 살 되던 해인 1648년, 레이우엔훅은 한 스코틀랜드계 포목상인 밑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현미경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을 것이다.
그는 도제 생활을 하면서 유리를 입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기술도 배웠다.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으로 미생물학의 기초를 일군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초등 교육밖에는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영국 왕립학회에 보낸 서한들은 ‘영어로 번역되어’ 학회지에 실려야 했다.
당시 지식인들의 공용어라 할 수 있는 라틴어를 몰라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 써서 보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미경은 1590년에 네덜란드의 안경 제작자인 자카리아스 얀센이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현미경은 망원경 보다 먼저 발명되었다.
하지만 1608년 한스 리페르세이에 의해 발명된 후, 바로 그 다음 해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과 행성 관측에 활용한 망원경과는 달리
초창기 현미경은 과학과 관련해 별다른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레이우엔훅의 취미 생활은 현미경 제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현미경을 과학 연구에 활용했다.
그리고 1670년대 중반 그는 현미경을 통해 ‘극미동물’(미생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1676년 5월 26일, 그는 지붕 위에서 떨어진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순수한 빗방울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을 발견했다.
1674년 원생동물과 세균, 담수성의 조류 등 미생물을,
1682년 물고기 적혈구의 핵을, 1683년 가로무늬근육(횡문근)의 미세구조 등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발견하였으며, 자기 입에사나온 박테리아를 보았다. 연구과정과 결과 등을 50년 이상 영국 왕립학회 등에 지속적으로 보냈다. 그중에서도 사람 정자의 발견(1677년)은 정원설(精原說)에 물적 증거를 부여했고, 물속을 헤엄치는 수많은 미생물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을 정도로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의 저서는 『현미경으로 밝혀진 자연의 비밀』(4권, 1695년) 등이 있다.
레이우엔훅은 아마추어 과학자였다. 그러나 미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1723년 8월 26일,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세상을 떴다.
아흔이 넘게 장수한 이 아마추어 미생물학자는 평생 500개가 넘는 렌즈를 갈았다.
게다가 약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영국 왕립학회를 포함한 학회와 학자들에게 약 600통이나 보낼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 과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그는 죽기 12시간 전까지도 관찰을 계속했고, 왕립 학회에 서신 두 통을 보냈다.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만든 현미경 26개를 왕립학회에 기증했다. 하지만 관리 소홀 때문에 한 대조차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레이우엔혹이 제작한 현미경은 고작 9개 뿐이다. 그는 자신만의 현미경 제작법과 활용법을 평생 공개하지 않았고 무덤까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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