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 ] 새로운 원소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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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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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12.17 ~ 1829.5.29
영국
화학wk
아산화질소의 생리작용을 발견하고 전기분해에 의해 처음으로 알칼리 및 알칼리 토금속의 분리에 성공하였다.
칼륨·나트륨·칼슘·스트론튬·바륨·마그네슘을 유리(遊離 : 화합물에서 결합이 끊어져 원자나 원자단이 분리되는 일)했다.
탄광의 가스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등(安全燈)을 발명했다.
콘월주(州) 펜잔스 출생. 목각공의 장남으로 태어나 16세 때 부친과 사별하였다. 이듬해인 1795년 J.B.볼레이스라는 의사 겸 약제사의 조수가 되어, 철학 ·수학 ·화학 등을 독학했는데, 특히 라부아지에의 《화학교과서》는 그에게 화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하였다. 19세 때인 1797년에 <열 ·빛 그리고 빛의 결합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써서 의사 T.베도스에게 보내어 과학적인 재질을 인정받았다. 1798년 브리스톨(Bristol)의 기체연구소(氣體硏究所)에 들어가 아산화질소의 생리작용을 발견하였다.
1801년 왕립연구소의 실험조수가 되어, ‘갈바니 현상의 전망’이란 제목으로 최초의 연속 공개강의를 시도하여 전류의 발견 이래 10년의 역사와 그 화학작용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1803년 왕립학회 회원이 되어, 전기분해에 의해 처음으로 알칼리 및 알칼리 토금속(土金屬)의 분리에 성공하였다. 1807년 칼륨 ·나트륨을 유리하고, 1808년 칼슘 ·스트론튬 ·바륨 ·마그네슘을 유리(遊離)했다. 1810년 염소 및 옥소의 단체성(單體性)을 예언하고, 1810∼1815년 수소는 산에 산성을 주는 것임을 시사했다. 데이비는 기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제(鞣劑)의 연구》(1803) 《농예화학교과서》(1813), 그 밖에 선복(船腹) 방부법의 연구 등이 있으나, 특히 중요한 것은 안전등(安全燈)의 발명(1816)이다.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광산의 재해도 증가했으므로, 탄광재해 예방협회의 의뢰로 월즈엔드 탄광에 가서 가스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갱내 안전등을 고안해 냈다. 1812년 작위가 수여되어 경(卿)의 칭호를 받았으며, 결혼하였다. 그 해에 왕립연구소의 교수직을 사임하였으나 실험실에서 연구는 계속하였다. M.패러데이가 데이비 실험실의 조수가 된 것은 1813년의 일이다. 1820년 왕립학회 회장이 되었으나, 1826년 가을부터 건강이 나빠져 왕립학회 회장직을 데이비스 길버트에게 물려주고 유럽 요양 중 제네바에서 급사하였다.
영국
화학wk
아산화질소의 생리작용을 발견하고 전기분해에 의해 처음으로 알칼리 및 알칼리 토금속의 분리에 성공하였다.
칼륨·나트륨·칼슘·스트론튬·바륨·마그네슘을 유리(遊離 : 화합물에서 결합이 끊어져 원자나 원자단이 분리되는 일)했다.
탄광의 가스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등(安全燈)을 발명했다.
콘월주(州) 펜잔스 출생. 목각공의 장남으로 태어나 16세 때 부친과 사별하였다. 이듬해인 1795년 J.B.볼레이스라는 의사 겸 약제사의 조수가 되어, 철학 ·수학 ·화학 등을 독학했는데, 특히 라부아지에의 《화학교과서》는 그에게 화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하였다. 19세 때인 1797년에 <열 ·빛 그리고 빛의 결합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써서 의사 T.베도스에게 보내어 과학적인 재질을 인정받았다. 1798년 브리스톨(Bristol)의 기체연구소(氣體硏究所)에 들어가 아산화질소의 생리작용을 발견하였다.
1801년 왕립연구소의 실험조수가 되어, ‘갈바니 현상의 전망’이란 제목으로 최초의 연속 공개강의를 시도하여 전류의 발견 이래 10년의 역사와 그 화학작용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1803년 왕립학회 회원이 되어, 전기분해에 의해 처음으로 알칼리 및 알칼리 토금속(土金屬)의 분리에 성공하였다. 1807년 칼륨 ·나트륨을 유리하고, 1808년 칼슘 ·스트론튬 ·바륨 ·마그네슘을 유리(遊離)했다. 1810년 염소 및 옥소의 단체성(單體性)을 예언하고, 1810∼1815년 수소는 산에 산성을 주는 것임을 시사했다. 데이비는 기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제(鞣劑)의 연구》(1803) 《농예화학교과서》(1813), 그 밖에 선복(船腹) 방부법의 연구 등이 있으나, 특히 중요한 것은 안전등(安全燈)의 발명(1816)이다.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광산의 재해도 증가했으므로, 탄광재해 예방협회의 의뢰로 월즈엔드 탄광에 가서 가스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갱내 안전등을 고안해 냈다. 1812년 작위가 수여되어 경(卿)의 칭호를 받았으며, 결혼하였다. 그 해에 왕립연구소의 교수직을 사임하였으나 실험실에서 연구는 계속하였다. M.패러데이가 데이비 실험실의 조수가 된 것은 1813년의 일이다. 1820년 왕립학회 회장이 되었으나, 1826년 가을부터 건강이 나빠져 왕립학회 회장직을 데이비스 길버트에게 물려주고 유럽 요양 중 제네바에서 급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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