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폰 노이만[Johann von Neumann] 컴퓨터
과학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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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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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2.28 ~ 1957.2.8
미국
수학자, 컴퓨터공학자
1903년 12월 28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으로 그의 성 앞에 붙는 폰(von)은 귀족 가문이었음을 나타낸다. 부유한 은행가의 삼 형제 중 장남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이 뛰어나 12세에 프랑스의 수학자 보렐의 함수론을 이해하였으며, 18세에 페케테와 공동으로 다항식에 관한 논문을 독일의 수학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1921년 부다페스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을 때에는 이미 일류 수학자로서 인정받았다. 1927년 베를린대학교 강사, 1929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강사를 거쳐 1930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교수가 되었다. 1932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세워지자 1957년 사망할 때까지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의 연구는 수학기초론에서 시작하여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설정 등 수리물리학적 과제를 대상으로 하고, 또한 수리경제학이나 게임이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현대적 수학기초론의 출발점이 된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1927)와 《힐베르트 공간론》(1927), 《집합론의 공리화(公理化)》(1928) 등은 모두가 20대에 이룬 업적이다. 《게임의 이론》(1928)과 《에르고드이론의 연구》(1932)를 집필하였으며, 《위상군론(位相群論)》(1933)과 《군(群) 위의 개주기(槪週期) 함수론》(1934)으로 '군 위의 조화해석(調和解析)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1944년에는 모르겐슈테른과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을 저술하였으며, 기상연구용 컴퓨터 고속도 전자계산기(MANIAC)의 연구·제작과 수치해석에 기여한 공로로 페르미(Fermi)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 머리(Murray)와 함께 작용소환론(作用素環論)과 연속기하(連續幾何)를 창시하였다.
1942년 8월에 '맨해튼계획'에 참여하여 '컴퓨터 프로그램 내장방식'을 〈전자계산기의 이론 설계 서론〉에 발표한 후, 1949년 마침내 에드박(EDVAC; Electronic Discrete Variable Automatic Computer)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때 고안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컴퓨터 설계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순서도와 서브루틴, 몬테카를로법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어학에도 뛰어나 영어는 물론 독일어와 프랑스어·라틴어·그리스어를 사용하였다. 1957년 2월 8일 암으로 사망하였다.
1890년대에 미국의 기술자 허먼 홀러리스는 그 해에 실시된 미국 인구 조사 자료를 처리하기 위한 전기 기계를 고안 했다.
컴퓨터가 완전한 전자 기계로 된 것은 진공관이 발전한 덕분이다.
1946년 최초로 범용 컴퓨터인 ENIAC(에니악 : J. W. 모클리와 J.P. 에커트가 펜실바니아 대학교의 무어 전기공학 학교에 설치)이 개발 되었다. 이는 사실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계산을 하는 용도 였다고 한다. 18,000개의 진공관으로 1초에 5,000번 계산 할 수 있었다.
수학자 앨런 매시슨 튜링은(1912-1954) 어떤 문제든지 유한한 수이 명령으로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미국
수학자, 컴퓨터공학자
1903년 12월 28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으로 그의 성 앞에 붙는 폰(von)은 귀족 가문이었음을 나타낸다. 부유한 은행가의 삼 형제 중 장남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이 뛰어나 12세에 프랑스의 수학자 보렐의 함수론을 이해하였으며, 18세에 페케테와 공동으로 다항식에 관한 논문을 독일의 수학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1921년 부다페스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을 때에는 이미 일류 수학자로서 인정받았다. 1927년 베를린대학교 강사, 1929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강사를 거쳐 1930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교수가 되었다. 1932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세워지자 1957년 사망할 때까지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의 연구는 수학기초론에서 시작하여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설정 등 수리물리학적 과제를 대상으로 하고, 또한 수리경제학이나 게임이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현대적 수학기초론의 출발점이 된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1927)와 《힐베르트 공간론》(1927), 《집합론의 공리화(公理化)》(1928) 등은 모두가 20대에 이룬 업적이다. 《게임의 이론》(1928)과 《에르고드이론의 연구》(1932)를 집필하였으며, 《위상군론(位相群論)》(1933)과 《군(群) 위의 개주기(槪週期) 함수론》(1934)으로 '군 위의 조화해석(調和解析)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1944년에는 모르겐슈테른과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을 저술하였으며, 기상연구용 컴퓨터 고속도 전자계산기(MANIAC)의 연구·제작과 수치해석에 기여한 공로로 페르미(Fermi)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 머리(Murray)와 함께 작용소환론(作用素環論)과 연속기하(連續幾何)를 창시하였다.
1942년 8월에 '맨해튼계획'에 참여하여 '컴퓨터 프로그램 내장방식'을 〈전자계산기의 이론 설계 서론〉에 발표한 후, 1949년 마침내 에드박(EDVAC; Electronic Discrete Variable Automatic Computer)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때 고안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컴퓨터 설계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순서도와 서브루틴, 몬테카를로법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어학에도 뛰어나 영어는 물론 독일어와 프랑스어·라틴어·그리스어를 사용하였다. 1957년 2월 8일 암으로 사망하였다.
1890년대에 미국의 기술자 허먼 홀러리스는 그 해에 실시된 미국 인구 조사 자료를 처리하기 위한 전기 기계를 고안 했다.
컴퓨터가 완전한 전자 기계로 된 것은 진공관이 발전한 덕분이다.
1946년 최초로 범용 컴퓨터인 ENIAC(에니악 : J. W. 모클리와 J.P. 에커트가 펜실바니아 대학교의 무어 전기공학 학교에 설치)이 개발 되었다. 이는 사실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계산을 하는 용도 였다고 한다. 18,000개의 진공관으로 1초에 5,000번 계산 할 수 있었다.
수학자 앨런 매시슨 튜링은(1912-1954) 어떤 문제든지 유한한 수이 명령으로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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